나 어제 무슨 실수 하진 않았지? 당연하지! 어제 정말 즐거운 저녁이었는걸. 확답을 듣고 싱크대에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푹. 오랜만에 과음했는지 목이 바짝 말랐다.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당연히 아무런 계획도 짜지 않은 상태. 그래도 어디 갈지는 정해야겠어서 여행 오기 전 날 가고 싶은 곳들을 급하게 써내려간 노트를 펼쳤...
내 첫 카우치서핑 호스트 마리아의 진짜 성은 나도 모른다. 한 번 보긴 했는데 잊어버렸다. 그녀와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그녀가자기 이름을 Maria Lovetree로 써 두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love와 tree라는 단어는 알고 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쉽게 기억하고 잊지 않게 돕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마...
시간을 돌려 다시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정하라고 하면, 이과에 가서 대학을 건축학과로 진학하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만큼 건축물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느낀 거지만 석재와 콘크리트 철근 이런 것들을 너무 좋아한다. 물론 자연 그대로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것들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들을 사랑한다. 좋은 건축물들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 아크로폴리스를 올...
신전의 빛 바랜 색이 어색하지 않게, 아테네의 모든 색은 어딘가 다 바래 있었다. 신기한 건 나무들도 그랬다. 내가 이 색이라고 주장하는 쨍한 녹색 아닌 적당히 채도도 낮고 명도도 낮은 올리브 색 근처의 나무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언덕이 내려다보였다. 여행 전에 그렇게 많은 것들을 찾아보지 않고 가서 그 언덕이 유명한 건지도 모르고 그냥 사람...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신들이 왜 그리스를 시작점으로 잡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아크로폴리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겠지. 사실 아테네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세대니까.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사 모으고, 다음 권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18권인가 19권에서...
전날 새벽에 누워서는, 의외로 한 번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정확한 시각은 모르지만 네 시에서 네시 반 사이 그 어느 즈음에 잠든 것 같은데 눈을 뜬 건 열 시 반이었다. 정신 차리고 마리아와 제대로 된 첫 인사를 나누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왔다. 마리아는 잠은 잘 잤냐고 물어보면서 어떤 차 마실래, 하고 일본에서 자기가 모아왔다는 녹차 샘플들을 여럿 보여 줬...
넉넉하게 나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기숙사에서 세 시 반에 출발했는데 어쩐 일로 유고 가는 버스도 일찍 오고, 유고에서 공항 가는 버스도 일찍 오고 해서 네 시 반에 티켓 발권과 수화물 인도까지 마쳐 버렸다. 다섯 시엔 출국 심사까지 통과. 보딩이 여덟 시부터 시작이라 얼결에 세 시간이 떠 버렸다. 호스트에게 미리 물어 놨던 마그넷도 사고 버거킹에서 와퍼주니...
작년 11월 19일 나는 이렇게 썼다. 빛 그리고 그림자. 나는 낡은 건물들을 프레임에 담는다. 문득 석고상이 사고 싶어지는 늦은 저녁. 내년의 늦은 봄에는 아테네에 있을 것이다.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다. 불가해의. 모든 것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교환학생을 가는 것이 확정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시기의 연휴에 맞춰 여행을 간다는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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